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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 : Photos

The City

by goyohanb 202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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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각은 신기하고도 무섭다. 특정 향이나 특정 맛이 촉발하는 기억이 어마 무시하거든. 작년 여름에 뉴욕에서 돌아온 후 거기서 쓰던  치약을 그대로 썼다가 텔레포트를 한 기분이 들어 욕실에서 멍하니 한참을 서있었다. 거기에는 한국이 아니라 레드훅의 그 컬러풀한 에어비엔비에서 양치를 하고 있던 내가 있었다. 후끈 대던 열기, 매일 같이 탔던 수상택시, 포뮬라 E, 끊임 없이 먹었던 젤라또.. 그 후 두 세달간 치약을 다 쓸 때까지 점점 그 느낌이 무뎌져 갔지만, 아마 내가 그 치약을 가끔, 아껴가며 썼다면 나는 그 해 여름 레드훅의 기억을 그때마다 매번 느끼지 않았을까.  마치 이 핸드크림처럼.

Aesop, 레버런스 핸드밤

레버런스를 바를 때마다 나는 지난해 겨울 뉴욕으로 돌아간다. 살을 에는 바람, 살짝 물기가 느껴지는 공기, 해 질 녘 파랗게 물드는 하늘, 맑은 밤 하늘에 찌르듯이 서 있던 빌딩들, 꺼지지 않는 불들, 빌딩 사이에 걸려있던 무대 조명 같던 달, 그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 연말의 분위기와, 끝 없는 연말 공연들, 리허설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나, 처음으로 오롯이 혼자 돌아다녔던 뉴욕의 거리, 고즈넉했던 숙소, 블라인드 사이로 보았던 함박눈.

하이라인에서, 2019



지난해 겨울, 일정의 반은 뉴욕에서, 일정의 반은 저지시티를 기점으로 필라델피아, 뉴저지를 왔다 갔다 하며 보냈다. 운이 좋게도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진 않았지. 아니, 뉴욕에 눈이 올 때 나는 뉴저지에 있어서 그 눈을 피할 수 있었다. 대규모 정전이 있었다는 날도 행사 때문에 뉴저지에 있었었고. 시티에 들어갈 때는 주로 첼시 쪽을 돌아다녔다. 캐나다에서 방문한 친구와 하이라인을 가려고 했을 때 전날 온 눈 때문에 하이라인을 다 막아 놓아서 못 들어가기도 해서, 아쉬운 마음에 가 봤더랬다. 뭐 추천도 많이 받았었고(아직까지도 센트럴 파크 안 가본 1인).

시티에는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커넥터. 2019

뉴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이나 뉴욕은 내게 있어서 여행하고 싶지 않은 나라, 왜 가는지 모르겠는 도시 중 하나였다. 고층 빌딩, 도시전망보다는 오래된, 역사적인 장소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내게는 여행 일순위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뉴욕을 처음 방문했던 그 여름, 도시에서는 레스토랑 위크가 한창이었다. 덕분에 세상에는 이런 음식도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지(그 후 뉴욕에 갈 때 마다 유명 레스토랑을 한 군데는 꼭 가보려 한다. 푸디인 H의 열정이 크기도 하고).


음식뿐만이 아니라 아주 다양한 것들을 뉴욕에서 보고 느꼈다(물론 가장 큰 건 음식의 지평선이 넓어졌다는 것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 다양한 문화. '문화의 용광로'에 나는 매년 발을 살짝살짝 담가 보고 오곤 한다. 그리고 그 건 모두 H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H가 아니었다면 나는 뉴욕에 갈 일도 없었을 거고, 뉴욕에 갔다 하더라도 그렇게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맛보지 못했을 테니까. 서로를 통해 서로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H가 아니었더라면 Per Se 가 뭔지도 몰랐을 거고(실제로 이번엔 갑자기 뭔지도 모르고 들어갔었지만!), 장 조지가 누군지도 몰랐을 거고. 제일 맛있는 초콜릿은 페레로 로쉐였을 거고(아직도 좋아하긴 한다).. !

Per se, 2019


사실 아직도 낯설기도 하고, 갈 때마다 무섭기도 한 곳이 뉴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처음 방문할 때는 뭣도 모르고 용맹하게 거리를 활보했는데, 그 후 매번 갈 때마다 사람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처음 가는 사람들한테는 조심하라는 말을 꼭 일러주는 내가 되어 버렸어. 너무 많이 알게 된 거지.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꼭 가보라고 하고 싶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세상은 정말 넓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뉴욕으로.


원글 2020.05.10

https://m.blog.naver.com/goyohanbeing/221955199049

뉴욕

사람의 감각은 신기하고도 무섭다. 특정 향이나 특정 맛이 촉발하는 기억이 어마 무시하거든. 작년 여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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